치유와 도약 ! 목포 JUMP JUMP 페스티벌 4탄 '그들만의 조기'
- 날짜
- 2015.12.08
- 조회수
- 194
- 등록부서
분단으로 인한 아픔을 간직한 채 이산의 고통을 가죽 꽃신으로 달래며 그 상처를 끌어안고 사시는 배꼭지 할머니가 먼저 간 아들의 제삿날에 공원 벤치에서 돌아가셨습니다.
18세 꽃다운 처녀 배꼭지가 27세 원산에서 제일가는 갖바치에게 시집가기로 하자, 노총각이 어린 색시가 시집올 때 가마타고 신고 올 가죽 꽃신을 지어 선물했던 그 꽃신을 벗어둔 채,,,
할머니의 죽음을 둘러싸고 도심의 한 공원 식구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회상을 통한 액자구조 형식으로 전개해나가고 그들은 할머니를 애도하며 그들만의 弔旗를 내걸었습니다.
다시 곧 만날 것을 기약하고 갓난 아기만을 업고 피난을 온 배꼭지는 꿈에도 그리운 고향땅과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죽꽃신을 지어준 남편을 가슴에 안고 통일이 되어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 남편을 만날 날만을 그리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사랑하고 보고싶은 이를 만나지 못하고 사는 비극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분단된 지 70년이 되고 분단 1세대가 고령이다보니 통일의 의미도 희미해져가고 분단이나 이산가족의 아픔을 분단이니, 통일이니 하는 말은 자기와는 상관없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비보이와 패션모델분야에 자신감을 찾기 위해 숨 한가득 들이마시고 점프하던 극 속의 청소년들은 알지 못합니다
배꼭지 할머니는 철조망 너머 그리운 해당화가 가득 핀 원산 앞바다 명사십리 고향땅을 밟고싶고 그렇게도 바라는 갖바치 남편과 만남을 가로막는 저 철조망이 원망스러워 구두대학 병원장 나광삼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그렇게도 보챘는지 모를 일입니다.
내가 저 강을 건너보아야만 그 강의 깊이를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배꼭지 할머니의 슬픔의 깊이를,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배꼭지 할머니가 아닌 이상 어찌 그 할머니의 심정을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싶은 그 마음을 뛰어넘을 정도일 것이겠지 싶을 뿐이지요.
가족의 품이 제일이라던 공원 매점 주인의 딸은 그리운 아빠에게로, 단란주점 종업원 명구와 남행순도 고향을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죽은 아들이 자꾸 불러 보고싶은 아들과 남편을 만나러간 배꼭지 할머니도 내 쉴 곳은 역시 고향,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18세 배꼭지 할머니의 봄날은 갔어도 나의 살던 고향을 그리워하던 그 할머니의 소원은 단지 보고싶은 가족을 만나는 것, 그 자체의 만남의 통일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 같습니다.
철조망이 녹이 슬고 실향민 1세대의 몸은 쇠잔해져가더라도 통일에의 염원은 가죽 꽃신을 신고 백두산까지 누빌 때까지 커져만 가겠지요.
원산 앞바다 명사십리 해당화 흐드러지게 핀 길을 27세 갖바치와 걸어가는 18세 배꼭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8세 꽃다운 처녀 배꼭지가 27세 원산에서 제일가는 갖바치에게 시집가기로 하자, 노총각이 어린 색시가 시집올 때 가마타고 신고 올 가죽 꽃신을 지어 선물했던 그 꽃신을 벗어둔 채,,,
할머니의 죽음을 둘러싸고 도심의 한 공원 식구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회상을 통한 액자구조 형식으로 전개해나가고 그들은 할머니를 애도하며 그들만의 弔旗를 내걸었습니다.
다시 곧 만날 것을 기약하고 갓난 아기만을 업고 피난을 온 배꼭지는 꿈에도 그리운 고향땅과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죽꽃신을 지어준 남편을 가슴에 안고 통일이 되어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 남편을 만날 날만을 그리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사랑하고 보고싶은 이를 만나지 못하고 사는 비극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분단된 지 70년이 되고 분단 1세대가 고령이다보니 통일의 의미도 희미해져가고 분단이나 이산가족의 아픔을 분단이니, 통일이니 하는 말은 자기와는 상관없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비보이와 패션모델분야에 자신감을 찾기 위해 숨 한가득 들이마시고 점프하던 극 속의 청소년들은 알지 못합니다
배꼭지 할머니는 철조망 너머 그리운 해당화가 가득 핀 원산 앞바다 명사십리 고향땅을 밟고싶고 그렇게도 바라는 갖바치 남편과 만남을 가로막는 저 철조망이 원망스러워 구두대학 병원장 나광삼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그렇게도 보챘는지 모를 일입니다.
내가 저 강을 건너보아야만 그 강의 깊이를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배꼭지 할머니의 슬픔의 깊이를,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배꼭지 할머니가 아닌 이상 어찌 그 할머니의 심정을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싶은 그 마음을 뛰어넘을 정도일 것이겠지 싶을 뿐이지요.
가족의 품이 제일이라던 공원 매점 주인의 딸은 그리운 아빠에게로, 단란주점 종업원 명구와 남행순도 고향을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죽은 아들이 자꾸 불러 보고싶은 아들과 남편을 만나러간 배꼭지 할머니도 내 쉴 곳은 역시 고향,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18세 배꼭지 할머니의 봄날은 갔어도 나의 살던 고향을 그리워하던 그 할머니의 소원은 단지 보고싶은 가족을 만나는 것, 그 자체의 만남의 통일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 같습니다.
철조망이 녹이 슬고 실향민 1세대의 몸은 쇠잔해져가더라도 통일에의 염원은 가죽 꽃신을 신고 백두산까지 누빌 때까지 커져만 가겠지요.
원산 앞바다 명사십리 해당화 흐드러지게 핀 길을 27세 갖바치와 걸어가는 18세 배꼭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