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목포!문학축전 <작가에게 쓰는 편지>입상작①

날짜
200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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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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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대      상


목포북교초등학교 2학년 1반
전대산


빛나는 별이 되신 차범석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길가에 서 있는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오늘, 우리 고장 목포의 자랑인 목포 문학관을 찾아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저는 선생님이 다니셨다는 북교 초등학교 2학년 전대산 입니다.
저와 선생님은 나이 차이가 많아 나이로만 보면 할아버지와 손자 같겠지만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인 목포 문학관에서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사진과 영상 그리고 책자와 같은 자료를 살펴보면서 저도 앞으로 선생님처럼 좋은 글을 많이 써서 예항의 고장으로 알려진 목포를 빛내고 싶다는 욕심 하나가 생겼답니다.
선생님!
제가 볼 때 선생님은 재주가 정말 많으신지 글도 쓰고 연극을 무대에 올리시려면 몸이 두개라도 힘드셨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전시관을 차지한 여러 종류의 역극 팜플릿과 선생님의 손때가 묻어 있을 것 같은 서재에 꽂힌 색깔이 누렇게 변해버린 오래된 책과 필기구를 보면서 그 책을 보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살며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눈에는 항상 돗수 높은 안경을 끼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셨을 선생님은 눈빛이 사슴처럼 인자해 마음씨도 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나이가 아직 어려 선생님이 쓰신 작품을 많이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산불이란 연극을 보면서 국군도 아닌 규복을 몰래 숨겨주는 점례의 마음이 산불을 쓰신 선생님의 마음과 닮았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전시관을 차지한 선생님 흉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를 반갑게 맞아 주실 것만 같은데 선생님은 이제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선생님이 남기신 작품들이 사라지지 않고 책이나 영화나 연극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선생님은 어쩌면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하늘나라에 가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되어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생님!
오늘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목포 문학관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저는 선생님처럼 좋은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언제나 제가 태어나서 자란 유달산과 바다와 손잡고 만나는 영산강이 있는 내 고향 미항 목포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고향을 잊지 않으시고 목포를 사랑해온 마음을 본받아 저도 열심히 배우고 익혀 먼 훗날 선생님 같은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고 싶은 희망 하나를 꿈꾸어 봅니다.
선생님!
그럼 할 말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만 우리 곁을 떠나가신 선생님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시기를 빌며 안녕할까 해요.


2008년 10월 10일 목포문학관에서
 전대산 올림
최 우 수 상




목포중앙여자중학교 1학년 6반
오영주


목포문학의 여류대표 박화성 작가님을 그리며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한창 책읽기에 빠져 있는 소년인 현재 목포중앙여중에 재학중인 1학년 6반 오영주라고 합니다. 이 번에 이 편지를 쓰면서 선생님이 쓰신 책을 접하게 되어 작가님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는데요. 많이 알게 된 만큼 궁금한 점도 많답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작가가 되고 싶어 하셨는지요? 그리고 언제 작가가 되고 싶었는지 등 많은 것이 궁금하답니다. 선생님이 이 편지를 받으신다면 제가 드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이 쓰신 책들의 제목은 하나같이 창의적인 것 같네요. 저도 가끔씩 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데 제목을 붙이기가 까다로운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멋진 제목들을 쓰셨는지요. 아마 이곳 목포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인 유달산과 영산강의 정기를 이어받아 그런 아름답고 멋진 제목들을 창작해내셨겠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선생님의 자전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인데요... 제목을 듣고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눈보라’라면 왠지 힘든 느낌이 드는데요. 선생님께서는 ‘눈보라’라는 단어처럼 어렵고 힘든 삶을 사셨나요?
작가님은 목포에 태어나신 분이라 더욱 친밀감이 드네요. 우리 목포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선생님같이 유명하신 분이 여기 목포에서 태어나 저로서는 매우 자긍심이 생깁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목포문학을 위해서 마지막 임종까지 글을 집필하셨다는 것이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예술가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중 한 분이 작가님이라는 게 참 자랑스럽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저의 고장 목포를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은 작가이시기 전에 교사이셨다는 게 훌륭하네요. 만약 아직까지 교사 생활을 하셨다면 아마 이런 훌륭한 작가가 되지 못하셨을 거예요. 자전소설인 라는 책을 간행하셨다는데, 제목이 참 인상깊어요. 특히 제목의 ‘눈보라’라는 단어가 왠지 제목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것 같아요.
를 읽을 때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선생님이 꼭 눈보라와 맞서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런 아름다운 작품하나가 쓰여지려면 얼마나 힘든 노력과 땀방울이 필요할까요? 저로서는 매우 감동적인 작품들을 쓰신 작가님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멋진 분이라 생각됩니다. 를 보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조건 뒤돌아서서 위험을 피하려는 저의 모습이 반성이 되네요.
선생님! 아름다운 작품들을 많이 쓰신 분이 목포에서 태어나신 작가이시라는 게 훌륭한 생각이 들고 멋진 생각이 듭니다. 저의 꿈은 선생님을 본받아 후세에 널리 알려질 만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답니다. 제가 만약 작가가 된다면 선생님처럼 펜과 종이를 들고 유달산과 영산강을 보며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작가라는 게 생활의 소재를 중심으로 해서 쓰는 수필이나, 상상과 허구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여러 갈래의 문학 작품을 쓰는 직업으로만 알고 있어서 글을 쓰는게 매우 간단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글쓰기를 너무나 쉽게 본 것 같네요. 가끔씩 글을 쓰려고 하면 잘 써지지가 않네요. 특히 진짜 작가처럼 써보려고 할 때는 말이죠. 작가라는 직업은 매우 힘든 것 같네요. 예를 들어 작품 한 개를 쓰셨는데, 그 작품이 모든 독자에게 흥미롭게 읽히는 베스트 셀러가 되거나 아니면 아무런 인기가 없는 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 작가는 두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과연 이 책이 인기가 있을까, 아니면 독자들에게 인기 없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 가지 생각말이죠.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초의 여류작가이신 선생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도요. 전 많은 책들을 읽어보고 싶은데 그 중에서도 작가님의 ‘고향 없는 사람들’은 제가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선생님께서는 1903년에 태어나셔서 학교를 다니신 후 작가 생활을 하셨다는데 그 때가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인 일제 강점기 때여서 선생님의 작품들이 더 손이 갑니다. 그 때의 작품들엔 그 당시 상황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네요. 선생님의 작품에는 여러 가지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그 단어들은 대부분 일제 감점기의 현실을 잘 반영하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에는 순수하면서도 맑은 내용, 또 다르게는 화려하고 멋지신 말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인생에는 쨍쨍 햇빛나는 날보다 눈보라치는 어려움이 많이 따르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고 목포여중학교의 교가도 작시하실 만큼 대단한 업적을 이루셨기 때문이죠. 작가님은 한국여성최초로 장편인 를 동아일보에 연재하실 정도이면 상당히 대단하고 아름다운 작가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목포에 박화성님을 기리는 문학관이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비록 지금은 돌아가셔서 더 이상 작가님의 글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제 마음은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 만음에 영원히 기억 될 거예요. 이번에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목포문학관에 와서 편지를 쓰면서 선생님이 쓰신 책은 물론, 선생님까지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는 것 같네요. 이렇게 작가님께 편지를 써보는 게 참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여성 작가로서, 가난과 육아. 지방 작가라는 삼중고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훌륭한 작품 활들을 하신 선생님을 본받고 싶습니다. 앞으로 현대 사회의 풍요로움과 문학에 대한 열의를 통해서 반성하고, 새로운 긍정적인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목포문학의 대표로서 뜨거운 열정과 정열을 지니신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선생님의 작품 세계로 빠져들어 보겠습니다.
연세가 85세가 되도록 작가 생활을 하셨다는 게 놀랍습니다. 비록 지금은 돌아가셔서 작가 생활을 못해 더 이상 작가님의 글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남아있는 책들은 꼭 읽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밤엔 특별히 선생님을 위해 기도드릴게요. 목포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과 작품이 되기를...
그럼 이만 줄일게요. 안녕히 계세요.




2008 . 10 .10 (금)
목포문학관에서 작가님을 그리며     오영주 올림.

 


최 우 수 상


목포중앙여자중학교 1학년 6반
이경아


목포문학 속 한 송이의 장미, 박화성 작가를 떠올리며...


안녕하세요? 저는 문학에 대하여 알아가고 있는 한 여중생입니다.
목포문학의 여류대표 작가이신 박화성 선생님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어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사실은 선생님에 대하여, 선생님의 작품에 대하여 아직은 잘 모르지만 미숙하게나마 알고 이렇게 편지의 첫 장을 써나갑니다.
우선 목포에서 태어나 훌륭한 이름을 남기신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70년, 제 15회 예술원문학상을 수상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작가분이 계신 것을 이제야 알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제 얘기를 잠깐 들어주시겠습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저의 꿈은 작가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소설을 지어보기도 하고, 시를 지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 책을 읽어보며 기쁨과 슬픔, 감동과 재미. 자신감과 깨달음 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과 친척들, 가족들 등에게도 그것을 함께 나누고, 웃고, 울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을 때마다 언제나 실패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은 것을 볼 때마다 자신감이 달아났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훌륭한 글을 쓰고 싶고, 선생님처럼 세상에 알려지고 싶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훌륭한 작가들, 그리고 선생님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가들처럼 글을 잘 쓸까?’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해내는 걸까?’ ‘작품들이 잘 알려지면 작가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선생님 , 지금 목포에는 선생님을 비롯한 두 분의 훌륭한 작가들의 생애와 여러 가지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목포문학관’이 만들어져 있어요. 저는 지금 그 곳에 와 있습니다. 정말 유달산 꼭대기에 서서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산뜻하고 아름다운 숨쉬는 문학의 세계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저를 환영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 말을 꺼내겠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중, ‘눈보라의 운하’라는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은 선생님이 아주 힘들고 어려웠을 당시에 지으신 책이요.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상황 속에서 글을 썼습니다. 두려워하지도 않고, 도망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소설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 거친 눈보라 속에선 아름다운 학 한 마리의 힘겹지만 보람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어둠 속에선 펜 하나가 꿈을 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의 연속인 상황 속에서 절망하고, 포기하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사람들이 그러고 있을 동안 선생님은 멋진 꿈 하나를 열심히 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작업이 끝나고 나면 선생님의 입은 멋진 미소를 띄고 있었겠죠?
그동안 저는 힘들면 포기하고, 주저앉았어요. 바보같이 엉엉 울기도 했구요. 하지만 ‘눈보라의 운하’를
읽고나서 제가 바보였다는 것을 알았어요. 선생님보다 힘든 것도 아닌데, 울기만 한 제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이제부터는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당당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 선생님은 1959년, 남편을 잃고도 방황하지 않고 계속 작품을 냈어요. 이 사실을 알고 놀랐어요. 남편을 잃었는데도 꿋꿋이 버티고, 계속 쉬지 않고, 포기 않고, 글을 써 나갔어요.
지금 저는 한 번 더 선생님의 훌륭함에 감동했어요. 얼마 전, 연예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분의 아내이신 개그우먼 정선희씨는 오열도 하고 너무나 힘들어했어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늘로 떠나간 남편을 목 놓아 부르고, 울었어요. 그 분이 선생님처럼 힘들지만 이겨내고 다시 재미있는 개그우먼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과 목포시장님까지 선생님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직 선생님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과 전 세계의 사람들이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어, 자신감과 깨달음을 얻는 것이 제 소원이에요.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본받았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장미처럼 붉디 붉은 정열을 가지신 분, 맑고 고운 영혼의 순수함을 지니신 분, 그리고 목포의 자랑스러운 학 세 마리 중 한 분이십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어려운 환경속에서 어렵게 지어내신 책 한 권, 한 권을 읽으며 감동받고, 내용을 소중하게 여겨 마음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선 제게 말로는 표현하지 못 할 큰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렇게 저를 감동시켜주시고, 변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는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놀라게 할 거예요. 제 지금의 꿈은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에게 선생님에 대해, 그리고 지금 오늘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 줄거에요.
그래서 아이들도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할 거예요. 분명히 그럴 거예요. 선생님도 함께 응원해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작품과 선생님을 영원히 잊지 않기를 바라고, 저도 선생님을 가슴깊이 새겨둘게요.
제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늘에서 지켜봐주세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8 . 10 . 10 금요일
― 문학을 알아가는 작은 소녀      이경아 씀 ―




우 수 상




목포중앙여자중학교 2학년 4반
최소정


진달래 같은 붉은 열정을 가지신 박화성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박화성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고향인 목포의 중앙여자중학교에 재학중인 최소정이라고 합니다.
목포문학관에서 주최한 「2008 목포! 문학축전」을 맞아 선생님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쓰기 전에 목포를 빛낸 인물들을 조사하다, 선생님의 성함을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조사를 하며, 선생님께서 지으신 책들과 선생님의 생애 등을 알아보았는데, 이런 훌륭하신 분이 목포에서 태어나셔서 목포문학을 한층 발전시켜주시고 알려주신 것에 대해 자긍심이 생겼고 놀랍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훌륭하신 작가가 되신 데에는 물론, 선생님의 노력도 있지만 저는 특히 선생님의 부모님의 노력이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선생님께서 태어나신 그 때에는 여자들이 교육을 잘 받지 못했지만 일찍 개화한 가정에서 태어나셔서 4살 때부터 성경을 읽으시고 5살 때에는 한자를 해득하시고, 7살 때부터 소설을 읽기 시작하신 덕분에 훌륭하신 최초의 여류작가가 될 수 있으셨지 않았을까요?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라는 말이 맞나봅니다. 열한 살 때 소설을 쓰기 시작하신 선생님을 보고 도대체 나는 열한 살 때 무엇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선생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우리나라의 상황 또한 선생님께서 훌륭한 작가가 되신데에 대한 다른 큰 이유라 생각됩니다. 선생님의 대표적인 작품인 ‘백화’나 ‘추석전야’, ‘하수도공사’처럼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처절한 삶의 모습과 억압환경을 고발하는 동반자적 문학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역사의식에서 저는 조국과 문학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대 상황이 선생님께 영향을 주었다면 선생님의 작품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성에 비해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지내던 여자들을 대신해서 힘든 상황을 문학을 통해 말씀하시는 ‘광풍속에서’라는 작품은 그 당시 여성들에게 큰 힘을 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하여,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커지게 된데에는 선생님께서도 한 몫을 하신 것 같아 뿌듯합니다.
최초의 여성 장편소설 ‘백화’를 쓰실 때 밤을 세워가면서 열정을 가지고 쓰셨을 모습을 생각하여,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본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태준 선생님께서는 ‘백화’를 ‘선생님의 문학에의 굳센 동경과 성의에서 맺혀진 꽃 한 송이다.’
라고 하셨는데 이 문장에서도 선생님이 ‘백화’에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아 부으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의 작품에 대한 설명만 보아도 어떠한 어렵고 힘든 일 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그 정신력과 끈기를 지니신 선생님의 강렬한 문학에의 열의를 배우고 싶습니다.
여성작가로서, 가난과 육아, 지방작가라는 삼중고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훌륭한 작품 활동을 하셨던 선생님의 삶의 태도를 본받고 싶습니다. 현대사회의 풍요로움과 편안함에도 항상 불평불만이 많았던 저의 삶의 태도를 다시금 선생님의 삶의 모습과 문학에 대한 열의를 통해서 반성하고, 새로운 긍정적인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목포문학관에 와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긴 박화성 선생님의 기념실에 와서 60년 평생을 일기를 쓰셨다든지, 후회없는 작품을 쓰시기 위해 다시 원고지 앞에 앉으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목포를 빛내주신 데에 대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꿈이 있다면 저도 선생님을 본받아 유달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영산강의 빛나는 물결을 보며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풍요를 심어주고,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진달래꽃과 같은 붉디 붉은 열정과 정열을 지니신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다시 한번 선생님의 작품 세계로 빠져들어 보겠습니다.


목포문학의 여류대표, 박화성 선생님을 그리며
2008 .10. 10
최소정 올림



 
우 수 상


목포중앙여자중학교 2학년 6반
김영은


목포의 영혼을 가진, 한 마리의 학,
박화성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우연히 선생님을 알게 된 목포중앙여중에 재학중인 김영은 이라고 합니다.
한국 최초의 인류 여성 작가이신 선생님에 대해 알고  난 뒤 저는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목포가 고향이면서도, 목포의 문학이나 우리나라의 문학에는 관심 갖지 않고 일본이나 다른 여러 나라의 소설들만 보아왔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선생님, 사실 저는 목포문학에 대해 그렇게 많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목포라는 도시는 우리나라에 비교하면 작은 소도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지으신 ‘추석전야’, ‘고향 없는 사람들’등 목포의 아름다운 글들을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은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신 감사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또한 60년 동안 하루도 펜을 놓지 않으시고 여성문학을 이끄시는 선두 주자로써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당시에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며 다른 많은 여성 작가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신 선생님을 보면 같은 목포의 여성으로써 본받을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와있는 이곳 목포문학관은 목포의 세 마리 학인 김우진ㆍ박화성 ㆍ차범석 작가님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선생님이 살아계셔서 이곳, 목포문학관을 방문하시면, 기쁘시고 뿌듯하실 텐데, 그러하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알고 난 뒤 저는 한국의 문학작품들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심훈의 상록수, 김동리의 역마 등, 한국문학작품들에도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특히 상록수에서의 시간적 배경이 일제강점기여서 인지 웬지 일제에 대항하여 자랑스런 여성들의 문학을 꿋꿋히 지켜오고 보존해 오신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성과 남성이 차별 대우를 받던 그 때에 여성의 권위를 신장시키고 유지시켜온 선생님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이러한 많은 문학작품을 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서 감사드리고 또한 선생님이 자랑스럽습니다.
60여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시 선생님의 여러 작품들이 아직도 목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면 “남성 작가의 누구에게도 비교해서 손색이 없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같이 훌륭하신 작가들의 글을 보면 자도 나중에 커서 제 꿈을 이루었을 때 자랑스러운 목포의 여성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는 그런 글을 한 편 쓰고 싶습니다.
물론 그러기에는 제 실력이 너무나도 형편없고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글의 소재를 일상생활에서 찾는데도 훌륭하고 멋진 글들이 탄생하는 반면에 저는 그 소재조차도 찾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선생님, 지금부터라도 목포의 많은 문학을 접하고 또한 선생님의 작품들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초등학생 시절에 동무들과 함께 유달산에 자주 놀러가곤 했습니다. 그 시절, 일등바위에 다다르면 풍선에 소원을 써서 날리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지요, 하지만 그때 어린 저에게는 마음속 깊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달산에서도 푸르른 영산강을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유달산이나 영산강 둘 다 푸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분명 그 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각각의 기와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우리 목포를 감싸고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솟네요. 하지만 선생님, 다음번에 유달산에 오를 때면 다른 소망이 생길 것 같습니다.
바로 선생님과 선생님의 작품이 목포의 자랑스런 기운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 의해 기억되는 것입니다. 제 소원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지요. 또한 하늘에서 선생님께서도 많이 기뻐하실거라 믿습니다. 저의 잘못 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시고 목포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함께 우리고장인 목포를 자랑스러워 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08년 10월 10일
목포의 한 소녀     김영은 드림.



 
우 수 상


광주교대 목포부설초등학교 1학년 2반
최승연


차범석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늘나라에서 아주 편하게 지내고 계시죠? 참 제 소개를 할께요. 저는 할아버지와 고향이 같은 목포에요. 저는 목포부설초등학교 1학년 2반에 다니는 최승연이예요. 지금 목포 문학관에서 할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께는 많은 글을 쓰셔서 연극으로 만드셨다면서요? 그리고 목포문학을 빛내셨다면서요? 와~. 정말 힘드셨겠어요. 전 일기나 글짓기할 때 아주 힘든데, 할아버지 짱! 정말 멋져요. 그리고 대단해요. 엄마가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산불’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6ㆍ25전쟁 때 일어난 이야기라고 했어요. 할아버지 솔직히 6ㆍ25전쟁이 무슨 전쟁인지 모르겠어요. 아빠가 우리나라가 서로 뜻이 안 맞아서 반으로 나누어져서 싸웠다고 했어요. 왜 싸웠을까요?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되는데 ......
‘산불’이야기에서 사월이, 점례가 나온다고 했어요. 할아버지 제가 규복이가 된다면 저도 점례가 더 좋아 할거에요. 사월이는 이쁘기만 하지 욕심이 많아요. 점례는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착해요. 저희 엄마가 이쁜 여자보다는 착한 여자와 결혼을 하면 더 잘산다고 했어요. 제가 생각했는데 착한 여자가 더 좋아요. 그래서 점례가 더 좋아요. 할아버지는 어떠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는 자가용이 없이 사셨다면서요? 와! 대단하세요. 어떻게 자가용없이 사셨어요? 그럼 버스, 택시만 타셨어요? 그럼 버스비, 택시비 많이 나왔겠다. 할아버지께서는 남에게 의지하고 도움 받는 걸 싫어하셨다면서요? 저는 엄마, 아빠에게 매일 의지하는데, 그래서 엄마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혼자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잘 안돼요. 솔직히 하기 싫구요. 소원을 빌었어요. 할아버지처럼 앞으로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게 노력을 많이 할께요.
할아버지.
이젠 진짜로 가을이나 봐요. 유달산에는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고 있어요. 아침하고 저녁에는 날씨가 추워지고 있어요. 할아버지 감기 조심하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08년 10월 10일
승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