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뛰어난 문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이는 다른 도시들이 모방하거나 따라올 수 없는 목포만의 문학적 경쟁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목포의 문학이 이렇듯 일찍부터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이나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을 세 가지로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항과 더불어 통상무역이 활발해진 점과 일본유학생이 타 지역에 비해 눈에 띄게 많았다는 점을 간접적인 요인으로 들 수 있다.1897년에 개항한 목포는 1910년대에 들어 도시발달의 단초를 마련하고, 1920년대에는 항만시설의 확충으로 "근래 면가(綿價)의 등귀로 항내는 대선(大船)이 폭주하고 해안통에는 면화가 산같이 쌓였으며 시중은 건축이 성행하여 전혀 지적(地積)의 여유를 볼 수 없는 호황"이요, "전남의 현관이요 물산집합의 중심지로 조선에서는 제3위를 점령할 만한 중요항"이며, "만 석의 거부와 수천 석의 재산가가 다수"라고 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1930년대에는 부역의 확장 등으로 인해 인구증가율이 전국 최고를 기록할 만큼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발전으로 인한 부의 축적은 교육으로 이어져 당시 인근 광주, 나주, 순천, 영광 등지의 일본유학생이 서너 명에 불과함에 비해 목포는 수십 명에 달하였다. 이들 근대지식인들 중 김우진을 비롯한 이화삼, 홍순태, 박경창, 장병준, 박동화는 초창기 연극계의 기틀을 다졌고, 허건을 비롯한 김동수, 문원, 백홍기, 윤재우, 백영수, 고화음, 양수아, 박철산, 소송 등 한국화단의 신예들이 목포를 무대로 활동했으며, 나천수, 오덕, 정철, 백두성, 박문석, 문일석, 강원순, 서광호, 이가형 등이 문학작품을 활발히 발표하였다. 말하자면 경제적인 풍요가 일찍부터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발달을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직접적인 요인으로 출판문화의 발달을 꼽을 수 있다. 목포는 지방에 위치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작품을 활자화할 수 있는 잡지가 일찍부터 발간되었다. 그 시초가 1930년에 발간에 김우진의 동생 김철진이 발행한 종합지 호남평론이다. 이어 1945년 이동주 등이 예술문화를 발간하였으며, 1947년에는 박화성의 단편집 고향 없는 사람들 출판기념회가 요정 '국취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1951년에는 목포문학이 실질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마련한 월간 갈매기와 주간 전우가 목포해군경비부의 지원으로 발간되었으며, 1952년에는 서정주, 김현승 등 전국의 시인들과 김환기(표지화가) 등 저명한 화가들을 총망라했던 시전문지 시정신이 차범석의 동생 차재석의 힘으로 발간되었다. 1960년에는 목포의 문인들을 하나로 집결시킨 목포문학이 창간된 이래 지금까지 발간되고 있으며, 1962년에는 김현, 최하림, 김승옥 등이 주축이 된 '산문시대 동인'이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동인지인 산문시대를 5집까지 발간하였다. 이 동인지는 나중에 창작과비평과 더불어 우리문학을 주도했던 문학종합지 문학과지성의 모태가 되었다. 이 밖에 흑조 등 무수한 동인지와 목포고의 잠룡 등 각급 학교의 문예지들이 꾸준히 발간되었다. 이렇듯 목포는 지방의 소도시임에도 일찍부터 전국적인 수준의 문예지들을 다수 발간함으로써 서울 문단을 무색하게 할 정도의 문학적 분위기와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셋째, 젊은 문학도를 격려하고 키워내는 후견인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어느 지역이나 단체이건 그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중심인물을 필요하듯이 문학도 마찬가지다. 문학에 있어서 중심축의 부재는 파산 또는 사분오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는 달리 당시 목포문학의 중심에는 젊은 문학도들을 길러내는 든든한 후견인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1950년대 항도여중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여학생들에게 문학교육을 철저하게 시킨 수필가 조희관과 1958년 순수민간단체인 '목포문화협회'를 결성하여 각각 회장과 사무국장을 맡았던 남종화가 허건, 그리고 차범석의 동생 수필가 차재석을 들 수 있다. 특히 허건과 차재석은 단체를 이끌면서 사재까지 털어 젊은 문인, 화가, 음악가, 연극인 들을 지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말하자면 이들처럼 뒤에서 밀어준 후견인이 있었기에 목포문학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 자료출처 : 허형만(시인,목포대국문학과 교수), 김선태(시인,목포대국문학과 교수) 목포문학관 강연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