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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진

목포진풍경
주소
목포진길11번길 1-5 (만호동)
전화
061-270-8291
추천
0
이용시간
0시~0시
휴무일
이용요금
무료
주차시설
주차장 없음
장애인시설
없음

목포 역사의 시작, 목포진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鎭營)이며 목포영·목포대라고 불렀고 만호(萬戶)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영·만호진·만호청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리상으로 볼 때 목포는 영산강 하구를 안고 있으며, 바다로 연결되는 지리적인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남과 경상남부지역으로 통하는 세곡 운반로로 사용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목포는 조선초기부터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 주목받게 되었다.

1439년 (세종21년) 처음 목포진의 설치가 재가 되었으며, 성의 모습이 갖추어 진것은 1502 (연산군 8년)으로 전해진다. 문헌비고에 의하면 당초 진성의 규모는 석축둘레 1,306척, 높이 7척 34촌이었으며, 우물과 못이 각 1개소씩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목포진은 한반도 서남해의 방어지역으로써 그 역할을 다 했으나 1895년 (고종 32년) 7월 15일 고종 칙령 제141호에 의해 폐진 되었다.

만호진이 설치된 정확한 연대는 세종 21년(1439년 4월 15일) 의정부가 무안 현의 목포는 왜적침입의 요해처이므로 만호를 파견하고 병선을 주둔토록 건의하여 세종의 재가를 받아 냈다. 이것이 목포만호진의 역사적인 출발점이다. 현재의 목포진 자리에 목포진성(城)이 처음으로 구축된 것은 연산군 8년 어간임이 밝혀지며 당시 중지 건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폐진 직후인 개항당시만 해도 청사의 일부가 남아있어 무안감리서, 일본영사관 또는 역국사관 기지로 사용 되다 훼손되어 목포진 유적비만이 남아있던 곳을 2014년 현재의 모습으로 일부 복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던 군사기지가 120여년만에 역사공원으로 복원돼 역사 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목포진역사공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목포 앞바다가 굽이지며 흐르는 영산강물이 목포 앞바다로 흐르고, 삼학도가 흘러가다 우뚝 멈춘 듯 바로 목포진 앞에 서있고 유달산 아래 작은 섬사이로 수없이 왕래하는 배들을 지켜보는 형세이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문화재자료 제137호 목포진지 (木浦鎭址)
분 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시설
수량/면적 : 135.5
지정(등록)일 : 1987.01.15
소 재 지 : 전남 목포시 만호동 1-56번지
시 대 : 조선시대
관리자(관리단체) : 목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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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및 주변정보(주변4km이내)

목포진 : 목포진길11번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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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관광문화체육국 관광과 관광마케팅 양현정
담당전화번호
061-270-8431
최종업데이트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