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목포시사

목포시사
주소
유달로 165 (죽교동)
전화
061-270-3542
추천
0
이용시간
0시~0시
휴무일
이용요금
무료
주차시설
주차장 없음
장애인시설
없음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제21호 / 목포시사 (木浦詩社)
분 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수량/면적 : 317
지정(등록)일 : 1976.09.30
소 재 지 : 전남 목포시 유달로 165 (죽교동)
시 대 : 조선시대
관리자(관리단체) :목포시


국내 유일의 시사(詩社), 목포시사

유달산 정문에서 조각공원 쪽으로 약 2km 거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본래 1890년에 하정 여규형(呂圭亨, 1849~1922) 등이 건립하여 유산정이라 부르며 문인들에게 시문을 가르치고 백일장 등을 주도하던 곳으로, 1920년에 무정 정만조(鄭萬朝, 1858~1936)가 재확장하여 유산사로 개명하고, 1932년에 중수하였으며, 1937년 목포시사를 발족하였다.
시사(詩社)란 문사들이 서로 시문을 독려하고 자연과 시를 노래했던 풍류의 장소로, 목포시사는 시인묵객들의 단순한 모임을 넘어 망국의 한과 우국충정을 토로하는 유림의 문학결사단체였다. 특히 한말의 유학자 정만조는 이곳에 머물며 퇴폐한 유풍을 바로잡고 학풍을 진작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매년 봄가을 2회에 걸쳐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는데, 전국 각처에서 200여 명의 문사들이 모여들어 한시의 명맥을 전수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이 시사에는 정만조의 문집을 비롯하여 한말의 전적(典籍), 한시현판(漢詩懸板), 백일장에서의 입선작 및 문인들의 시고(詩槁)가 소장되어 있다.

건물의 규모를 보면 4칸, 측면 1칸반으로 팔작지붕이다. 일단의 다듬는 돌 기단위에 반 듯한 기초를 놓고 민흘림의 원형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기둥위에 전퇴의 보아지가 보이며 장혀와 도리로 결구한 민가형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전면에는 마루를 깔았다.창호는 전면 2칸 4분합 띠살문이며 양툇칸은 2분합 띠살문으로 되었다. 원래는 좌우와 후면의 중방이 벽돌로 된 것을 1979년, 1984년 2회에 걸쳐 벽돌을 제거하고 지붕이상을 보수하였다.

보이지 않은 시로 가득찬 집 목포시사

봄을 지척에 두고 하필 겨울 날, 보이지 않는 시로 가득 채워진 집! 유달산에 자리하고 있는 목포시사!를 찾아 나섰다.
색깔을 잃은 풍경은 고요한 생각에 잠기게 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목포시가 품에 안기고 유달산이 시린 어깨를 감싼다.

시사(詩社)는 서로 뜻이 통하는 선비들이 모여서 자연을 노래하고, 시를읊고 풍유를 즐기던 곳이다. 목포시사의 모태는 1920년에 결성된 유산시사(儒山詩社)라고 할 수 있다. 유산시사는 1920년 4월 29일에 창립되었는데 초대 시사장 草亭 金星圭와 竹下 崔芳鉉, 雲河 金賢瑞 등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유산시사의 활동은 1932년 시사건물인 유산정의 창건을 계기로 활발해 졌으며, 그 영향을 받아 1930년대 말에 목포지역에는 보인시사(輔仁詩社)라는 또 다른 문학결사가 구성되기도 하였다. 이후 각각 활동을 해 오던 유산시사와 보인시사는 1961년 통합되어 현재의 목포시사로 새롭게 발족하게 되었다.

목포시사는 중앙정계에서 목포 주위의 도서지방으로 유배당해 유배지로 가거나,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앙문인들이 유달산에 올라 서정과 자신의 뜻을 아름다운 자연과 비견해서 회포를 풀고자 했으며, 그들과 이 지방 문인 사이에 서로 시로서 화답하는 문학적 교류가 이루어졌던 곳이라고 하겠다. 또한 목포시사가 만들어진 시기는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단순히 시인묵객들을 위한 모임이라기보다는 망국의 한과 우국충정의 심정을 토로한 유림들의 문학적 결사체로서의 성향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목포시사는 창립이후 목포백전회(木浦白戰會) 등과 같은 이름의 시회(詩會)를 개최하여 이 지방의 한문학 활동의 명맥을 계승해 왔고, 지금도 매년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목포시사의 건물은 1976년 9월 30일자로 전라남도 기념물 21호로 지정되었으며, 건물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1칸반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의 모양을 하고 있다. 목포에 세워져 있는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띄고 있다. 현재 목포시사 건물 내부에는 유산정 상량문, 유산정 중수기 등 목포시사의 연혁과 관련된 글과, 문인들의 작품 등 36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현재 목포시사 건물에는 '목포시사'라는 제목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목포시사는 이 단체의 이름이고 이 건물의 이름 즉, 당호는 '儒山亭'이다. 지금 걸려있는 '목포시사'라는 제목의 현판을 뒤집어 보면 원래 걸려 있었던 '유산정'이라는 제목의 당호가 나온다. 이 유산정 글씨는 초정 김성규의 자필로 새겨져 1932년 유산정 건립 당시 만들었던 중요한 유산인데, 나중에 유산시사가 목포시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후학들이 목포시사라는 간판을 내걸기 위해,
이 유산정 현판을 뒤집어서 거기에 목포시사라고 쓰고 현재 모습처럼 걸어놓았다.


버스길찾기 검색

위치 및 주변정보(주변4km이내)

목포시사 : 유달로 165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