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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고하도이충무공기념비
주소
달동 산 230-2
전화
정보없음
추천
0
이용시간
휴무일
이용요금
무료
주차시설
주차장 없음
장애인시설
없음

<문화재 정보 >

지정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39호 / 고하도이충무공기념비 (高下島李忠武公紀念碑)
분 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 1기/90.2
지정(등록)일 : 1974.09.24
소 재 지 : 전남 목포시 고하도길 175 (달동)
시 대 : 조선시대
관리자(관리단체) : 목포시


목포는 1897년 개항되기 수백년 전부터 서남해의 길목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역사적 기능을 해왔다.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정유재란(1597년)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된 목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사적 현장이 바로 목포 앞바다, 현재 충무동에 해당하는 고하도이다. 고하도는 임진왜란 이후 1597년 일본이 우리나라에 재 침임했을 때 이충무공이 울들목(명량)에서 승리를 거둔 후 그 해 10월 29일 고하도에 진을 설치하고 이듬해 2월 16일 진을 옮길 때 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1597년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고하도의 진성을 축성하고 군사를 주둔하였던 터에 1772년(경종2년) 통제사로 부임한 오중주와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이 세운 비이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야산에 버려져 있다가 광복이후 현 위치에 비각과 함께 세워졌다. 비의 규모는 높이 227cm, 너비 112cm, 두께 36cm이다.

비명은 유명조선국고삼도통제사 증좌의 정층무이공 고하도 유허기사비이며, 남구만이 비문을 지었고, 조태구가 글씨를 썻으며, 이광자가 비문을 새겼다.

비문은 17행 48자로 이순신 장군이 군사주둔처로 고하도를 설정하게 된 과정, 오중주통제사가 유허비 건립을 주도한 내용, 전쟁 시 군량미의 중요성, 후임 통제사로 하여금 고하도 진터임을 알도록 하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는 내용이 있고, 뒷면에는 승정기원후구십오년임인팔월 로 건립연대가 새겨져 있다.

매년 4월 28일에는 이 곳에서 이충무공 탄신제가 열려, 고하도에서 이순신 장군의 행적과 나라를 위하는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사진출처]
본 저작물은 문화재청에서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우리지역문화재'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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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 달동 산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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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도시문화재과 문화유산 정혜림
담당전화번호
061-270-8320
최종업데이트
2020.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