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용머리
사공의 뱃노래가 절로 울려퍼지는 저녁 노을 속 용당귀범(龍塘歸帆), 목포 앞바다의 龍, 고하도
목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다. 목포시의 남쪽 해안을 감싸안은 듯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고하도는 높은 산(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 하여 고하도 (高下島)라 불렸으며, 보화도 (寶化島), 고하도(高霞島), 칼섬이라고도 불리었다.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의해 전략지로 활용되어 왜적의 침투를 막아낸 곳으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충무공기념비(지방유형문화재 39호)가 있다.
또한 이 지역을 이충무공유적지(지방기념물 10호)로 지정하여 충무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목포항의 관문인 고하도 용머리는 유달산 낙조대나 일등바위의 전경이 아름다우며 밤에는 바다와 어우러진 오색등의 찬란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고하도는 유달산 관운각에서 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관운각의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비가 온 뒤 안개가 끼면 산허리에 구름이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볼 관자에 구름 운자를 써서 부른듯하다.
충무공이 1597년 10월 29일부터 이듬해 2월 17일까지 107일 동안 주둔하여 군사를 재정비했던 곳이다. 이충무공은 이 섬을 전략지로 이용 임진왜란 때 왜적의 육지 침입을 막아낸 곳이다. 장군이 진을 쳤던 흔적과 그의 공적을 가리기 위하여 세워진 모충각이 이곳에 있다. 1722년 8월에 충무공 5대손인 이봉상에 의해 건립한 유허비 비문은 남구만이 지었고 글씨는 조태구가 썼다.
남구만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해는 상기 아니 얼었으냐.
재 넘어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이라는 시조를 지은 분이다.
고하도의 뒷도랑 마을에는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구덩이들이 있어 합수를 보관하기 좋았으며, 배를 정박하기도 좋아 서산동뿐만 아니라 목포 일대의 오줌과 똥은 모두 수거해 '똥배'로 이동하여 합수를 이곳에 모아 두었다 거름이 필요할 때 퍼다 밭에 뿌려 야채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공생재활원' 일제강점기인 193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전국의 불량아동을 수용하기 위해 건립된 감화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감화원은 '국립목포학원'으로 개칭되고 다시 '재생원'으로 개칭되어 고아들을 수용하다가 1960년대 폐원되었으며, 1984년 공생재활원이 건립되었다. 대도 조세형도 어린시절 이곳 감화원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