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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와 목포문학박람회

작성일
2023.09.22 14:35
등록자
이경희
조회수
24
첨부파일( 0)

작년부터 남편과 함께 통영을 시작으로 남도의 도시들을 누비고 다닐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남도 전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수, 하동, 순천을 차례로 다니게 되면서 주변부 소도시들과 읍내들까지, 섬들까지 둘러보게 되었다. 이같은 기회를 얻어 참으로 큰 행운이었고, 이렇게 내 나라, 내 조국의 아름다운 고장들을 보게 된 영광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통영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이순신 장군을 온 마음을 다해 만나게 되었다.
통영에서는 한발짝 뗄 때마다 마주치는 김춘수, 정지용, 박경리, 윤이상, 유치환. 이중섭. 백석… 너무나 많은 근현대문학과 예술을 총망라하는 수많은 별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들 활약의 배경에는 이순신 장군의 통제영이 자리한다는 박경리 선생의 글에 마침내 공감하게 되었다. 통제영 12공방에는 각양각색의 공방 기술자들뿐 아니라 기예를 갖춘 예술가들이 수없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통영에 이어 우리는 남도 곳곳에서 이순신 장군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통영에서 꽃피운 것과 같은 튼튼한 국방과 문예가 함께 성장한 도시를 만나고 싶어했다. 다행히 순천에서 임경업 장군도 만나고 무진기행의 김승옥,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만나 그 갈증을 조금은 풀 수 있었는데, 드디어는 목포에서 다시 통영 못지않게 수많은 문학과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때마침 2023년 9월의 목포와 주변부에서는 ‘목포2023문학박람회’, ‘전남국제수목비엔날레’ 그리고 명량해전을 기념하는 ‘명량대첩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보다 수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 목포를 간다면 맨처음으로 노적봉과 소년김대중도서관부터 찾아가라고 말할 것이다.
노적봉은 거리를 두고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누워있는 한 사람의 옆얼굴이 보인다. 굳세고 결백한 성품을 가진 한 남자를 보여주는 듯한 이 예사롭지 않은 바위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왜군과의 전투에 도움을 주는 전설도 가지고 있는데,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소년김대중도서관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목포진과 노적봉이 보이고 목포 시내와 목포를 둘러싼 바다가 다 보이는 장소였다. 이곳에서 자란 소년이 어찌 호연지기를 가지지 않을 수 있을지 금새 납득이 되었다.
그래서 목포는 김대중과 같은 유명 정치인을 배출하고, 성옥 이훈동 같은 큰 돈을 번 사업가가 예술품 수집과 전시로서 목포에 기여하며, 김우진, 김현, 차범석, 김지하, 박화성 같은 기라성같은 문학예술계의 별들이 배출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번 목포 방문에서 북교동 일대를 둘러보면서 김우진 일가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부친 김성규와 김우진, 김철진, 김익진 네 부자가 한결같이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저마다 삶의 선택을 달리 하며 살아간 모습에서 시대정신과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김우진을 새롭게 만났다. 이전에는 나약하게 연애 좀 하다가 현해탄에 빠져 죽은 김우진이었다면, 시대적 고뇌에 압살당하고 시들어버렸으나, 한때 동시대 거목이던 이광수를 비판하던 패기넘치던 문학청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일에 찾아본 문학박람회는 정말 큰 행사였다.
사방에서 주차장을 안내하고 교통정리를 하고 푸드트럭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즉석그림을 그리는 설치미술가가 보이고, 비눗방울 예술가가 있으며, 플랭카드 앞에 분장한 조각상 같은 남녀도 이채로웠는데, 작년 이태원에서 압살된 젊은 넋들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선지 행사라면 의례히 보아야 하는 119구급차와 응급치료단이 구성되어 있는 장면이 나에게는 제일 인상적이었다.
김현문학주간을 기대하고 들어간 강당에선 다른 행사가 열리고 있었는데, ‘문학과 책문화생태계포럼’이 열리고 있었다. 덕분에 목포가 문화도시로 지정되어 있고, 각종 문화 조례들을 세세하게 지정하고 있는 도시이며 그중에는 도서관 조례 등도 갖추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실 문학과 출판문화에 대한 이같은 포럼은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인 내 남편에게도, 상담전문가로서 한국독서치료학회 이사 직함을 가진 나에게도 무척이나 관심있는 주제였는데, 목포는 인구가 엄청난 대도시도 도청소재지도 직할시도 아니면서 서울에서도 열리기 힘든 행사가 이런 깊이있는 고민을 가지고 포럼을 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대한민국 남단에서 이같은 행사가 성황리에 전도시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어… 나는 그저 참여만으로도 기쁠 따름이었다.

문학박람회와는 별개 이야기지만, 목포신항에서 만나게 된 인양된 세월호도 인상적이었다. 노적봉 못지않게 이 세월호는 목포 사방에서 보인다. 목포대교에서, 고하도에서, 해상케이블카에서, 심지어 외달도 섬에서도 보인다. 세월호 대부분의 사망자를 가진 도시 안산에서도, 사건이 벌어진 진도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인수를 거부한 세월호를 목포가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자연스럽게 여기기로 했다.
이 도시는 출퇴근시간에도 트래픽이라곤 없는 작은 도시이면서 크고 넓은 땅을 가졌고 서해와 남해 두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거대한 심장으로 이 나라의 내일이라는 청사진을 그리는 곳이다. 이만한 도시이기에 이순신 장군이 명량으로 기사회생하고 단기간에 군량미 수만석과 선박들을 만들 수 있었고, 오늘날에는 세월호까지 품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
바로 이런 땅에서야말로 우리 민족의 말과 글로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할 작가들과 예술가들을 얼마든지 길러낼 수 있는 깊숙한 토양과 기반을 갖춘 곳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우리를 진정 풍요롭게 하는 내일을 바라보는 도시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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